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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행복한 스케이터로의 여정

메모/낙서

by nori777 2011. 12. 3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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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시 한번, 마크툽 | 웃는가면
원문 http://blog.naver.com/chasse4/100970385


2010년 2월 26일 벤쿠버,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포디움 정상에 우뚝 올라섰습니다.

숱한 이변이 벌어진다는 올림픽, 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올림픽 챔피언.

그러나 그녀는 이변이 일어날 빌미조차 주지 않았고,

자기 힘으로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 * * * *

 

피겨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순간,

가슴 벅찬 이 기분 그대로 김연아 선수에 대한 글을 끄적여봅니다. 

 

                                                                                                                                        

 

2009년, 여왕의 탄생을 알리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부상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김연아 선수는 힘들게 피겨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상 속에서도 출전하는 전 대회 포디움권이라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갔고,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서서히 알려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함께 하게 된 세 번째 시즌(2008-2009)만에 부상을 털어냅니다. 압박붕대와 물리치료,
진통제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를 대적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었죠.
그를 입증하듯, 김연아 선수는 쾌조의 성적을 연달아 거머쥐며 시즌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월드챔피언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2009 세계선수권 시상식에서 김연아 선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한민국의 수많은 피겨팬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고,
그 다음날 린다 에더의 골드에 맞춰 우아한 갈라를 선보인 그녀를 향해 전세계의 피겨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각국 외신들은 '여왕의 탄생'을 알리는 기사를 앞다투어 싣기에 바빴지요.

 

 기억하십니까?
강렬한 눈빛과 몸짓으로 빙판 위를 춤추던 죽음의 무희와 애절한 얼굴로 천 일 동안 왕을 달래던 세헤라자데ㅡ,
지난 시즌의 피겨퀸을.

 


나는 월드 챔피언이 됐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실력 유지를 하지 못해 사라져버리는 월드 챔피언들 중 하나가 되기는 싫었다.

                                                                                           - 김연아 자서전 中

                                                                                                                                         
 

김연아가 넘어서야 했던 방해물들

                                                                                                                                        

 

 대한민국에서 피겨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피겨 전용
빙상장조차 없어서 선수들은 새벽녘부터 일어나 대관이 가능한 빙상장을 찾아 차로 수십킬로미터씩 이동해야만 했고,
수 천은 거뜬히 들어가는 전지훈련비에 의상비, 스케이트부츠비, 코치비, 안무비 등을 합치면 일년에 억에 가까운 이 필요했으니까요.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한결 쉬울 것입니다. (글 : 이니♪, 번역 : perlsis, 글 수정 · 감수 · 구성 : DES)
 


 

 심지어 국내에서 피겨 전문 용품을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김연아 선수는 시니어 데뷔를 하고난 뒤에도 한동안 피겨스케이터용 부츠가 아닌 하키용 부츠를 신고 경기를 했습니다. 게다가 발에 잘 맞지도 않아서 부츠 발목 부분은 아무리 새 것으로 바꿔도 하루만에 무너져내리곤 했고 날은 금새 중심이 비뚤어져 김연아 선수의 어머님이 망치질을 해가며 늘상 수리를 해야만했지요. 빙상장 환경도 따라주지 않는 마당에 부츠 문제까지 겹쳐지면서 김연아 선수의 몸은 늘 부상에 신음을 해야 했습니다.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힘든 나날이었지요.

   

끊이지 않는 부상, 물리치료와 진통제 그리고 압박붕대에 의존하던 시절 

빙상연맹에서 피겨스케이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다툼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았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므로 자세히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2006-2007년 시즌 당시 부상으로 인해 불참 의사를 밝혔던 국내 대회를 빙상연맹의 강권으로 출전을 해야했던 일은
김연아 선수에게도, 피겨팬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지요.
화동조차 없어서 관중들이 던져주는 선물들을 일일이 직접 주워서 나가야 했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 때 연기했던 쇼트 프로그램 '록산느 탱고'에 국내 심판들은 46점을 매겼었지요.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 '부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말까지 들어야했던 김연아 선수는 그 후
2007 세계선수권
에서 71.95점으로 쇼트 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국내에서는 46점을 받았던 프로그램으로 말이죠.


2007 세계선수권에서 71.65점으로 세계신을 세운 록산느 탱고
 
브라이언 오서 코치를 만난 이후로 김연아 선수의 생활은 점차 바뀌어나갔습니다.
예전에는 부상에도 아랑곳않고 훈련을 강행했지만 고질적인 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때로는 훈련을 쉬어야할 때도 있다고 오서 코치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죠.
연습을 하지 않고 쉬면서도 불안해하는 김연아 선수에게 오서 코치는 '잘하고 있는 거야.'라고 늘 말해주며 안심을 시켰다고 하지요. 훈련지도 아예 토론토로 옮겼습니다.
한국의 열악한 환경도 문제였을뿐더러 훈련에 집중을 하기 어렵게끔 관심이 워낙 집중되는 탓도 있었지요. 선수용이 아닌 일반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기저기 뒤섞여 스케이트를 타는 일반인들, 쉴새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연아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ㅡ.  

부츠로 고생하던 때, 일반 링크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연아

 하지만 부츠 문제도 해결되고 좋은 코치도 만났고 훈련지도 만족스러워졌음에도 아직까지도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바로 '석연치않은 판정'이었지요. 지난번 일본에 있었던 2009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때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음악 조작 논란부터 시작해서 다운그레이드 판정까지 말이 많았지요. 일반인들은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피겨팬들은 그 일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유투브 사이트에서요.
편파 판정에 대한 항의를 하는 동영상들은 명확한 이유도 없이 유투브측에 의해 삭제되곤 합니다.
그 어떤 증거나 상세한 안내사항 없이 단지 '저작권 침해를 했기 때문'이라며 통보를 하곤 하지요.
해당 동영상을 제작해올렸던 사람들이 이의제기를 하고 사유를 캐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결국 이의를 받아들여 영상을 복구시켜줘놓고서도
그 후에 끝내 그 영상은 다시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유투브 전쟁에 관한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blog.daum.net/idavy/16454628 여기에 있습니다.
해당 동영상 제작자 중 한 분인 DES님의 블로그입니다. 

해외 피겨 블로그 Blazing Blades에 링크된 동영상의 모습 

위 캡쳐에서 동영상 아래쪽에 블로거가 기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This video was inserted in Chicago Trubune journalist, Philip Hersh's Article.

이 영상은 시카고 트리뷴의 저널리스트인 필립 허쉬의 기사에 링크되었었다.

Afterward it was viewed more than 200,000 times all around the world.

그 후 전 세계적으로 200,000번 이상이나 이 영상을 보았다.

However, around a week before the start of the Winter Olypics, this clip was deleted and has suddenly reappeared.

그러나 동계 올림픽의 시작을 일주일 남짓 남겨둔 시점에, 이 영상은 삭제되었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It's likely that the content has been viewed negatively by some in the International Skating Union for demonstrating how technical callers can use their position to negatively affect any skater's score unjustly.

아마도 이 영상이 ISU에게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내용은 테크니컬 심판진들이 그들의 지위를 부정하게 이용하여 특정 선수의 점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Take a look and decide for yourself.

영상을 보고 직접 판단해보도록.
 

 당시의 동영상들은
 'Who is trying to mess up Yuna Kim's jumps?'(제작자 DES),
 'What do you want to see in Figure skating?'(제작자 Bakersboy) 이 두 개입니다.
지금도 피겨팬들은 유투브에 이 영상들을 올리면서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판정에 괜한 트집을 잡는 것 아니냐고요?
피겨는 정치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자에게 유리하죠. 2009년 세계선수권 당시 ISU 공식 스폰서들이 어땠는지 한 번 보시죠. 

 9개 스폰서 중 6개가 일본 기업입니다. 일본의 영향이 정말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투브 사이트에서 아사다 마오 선수를 비방하거나 그녀의 점프 퀄리티를 문제삼는 영상은 이유를 불문하고 유투브 측이나 IMG(스포츠 매니지먼트사)에 의해 즉각 삭제됩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를 비방하는 내용의 영상은 팬들이 일일이 신고를 해도 삭제 조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체 왜일까요?
 

 '김연아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국적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피겨 약소국입니다.
이전까지 국제 무대에서 10위권 이내에 드는 것조차 생각을 해볼 수 없는 일이었지요.
올림픽 무대에서 피겨 스케이팅 종목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겨는 기록 경기가 아닌, 심판의 주관이 개입되는 판정 경기이다보니 피겨 약소국 출신의 천재는 늘 석연찮은 판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피겨팬이라면 떠올리기도 싫을 경기가 하나 있지요. 2008년 세계선수권입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기를 펼쳤지만 김연아 선수의 점수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했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은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 넘어져버리는 바람에 10초 가량 아예 연기를 하지 못한 아사다 마오 선수에게 주어졌죠. 
피겨계의 대모인 소냐 비앙게티 여사조차도 그 때 당시 '만일 그 날 채점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금메달은 김연아의 것이었을 것이다.'하고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소냐 비앙게티 여사의 칼럼 내용 일부 (혹쿠님의 영상 中 캡쳐) 

 이 많은 방해물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 중 일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이 모든 것을 의연히 버텨내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쟁취해냈습니다. 시련에 묻히지 않고, 시련을 딛고 끊임없이 올라선 것입니다. 

                                                                                                                                        
 

드림팀, 그들이 있기에 연아도 있다

                                                                                                                                         

 브라이언 오서, 데이빗 윌슨, 그리고 김연아. 팬들은 이들의 조합을 더할나위없이 환상적이란 의미에서 드림팀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올림픽 쇼트 경기 당시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오서 코치의 '아빠 미소'
 

 브라이언 오서는 코치 경력으로 따지면 아직 새내기에 불과하지만 그 어떤 코치들도 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첫 제자가 김연아 선수인데다 미국의 유망주들인 아담 리폰 선수와 크리스티나 가오 선수까지 맡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코치 경력이 아직 짧아서 새내기라고 하는 것뿐, 그의 현역 선수 시절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1981년 캐나다선수권 챔피언이 되면서부터 캐나다 국민 전체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는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입니다. 캐나다의 피겨 전설이지요. 1988년 올림픽 당시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와의 경쟁은 '브라이언 전쟁'이라 불리며 지금도 많은 피겨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엄청난 이벤트였습니다. 
 

브라이언 전쟁의 희비를 가른 판정 결과 (KBS 방송 中 캡쳐) 

 위의 판정 기준은 구채점제입니다. 신채점제는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로비 사건 이후로 도입된 채점 기준이거든요.
해서 0.1점차로 금메달의 꿈을 놓치고 만 오서는 얼마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그 후 10년 동안이나 그 날의 연기를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은메달이 두 개씩이나 있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도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올림픽의 중압감을 탑스케이터로서 겪어본 오서의 경험은 김연아 선수에게도 도움이 되었지요.  

 '누구도 네가 무슨 심경인지 모른단다. 어머니도, 트레이너도, 물리치료사도, 아무도 네 마음을 몰라. 
네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모르지. 하지만 난 알고 있단다.'
 

 비록 코치 경험을 없을지라도,
이렇듯 선수로 겪었던 경험을 통해 김연아 선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담을 덜어주고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면서
브라이언 오서는 이제 훌륭한 코치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까지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정기를 꼈던, 마르고 수줍은 소녀와의 첫대면 이후 그녀와 함께 한 4년 동안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행복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위) 아이스쇼 안무 설명을 위해 시범을 보이는 데이빗 윌슨

(아래) 연아의 안무 지도를 하고 있는 데이빗 윌슨

데이빗 윌슨의 안무는 참신하고 아름답지만 굉장히 빡빡하기로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 김연아 선수의 프로그램에는 어지간한 선수들은 소화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안무들이 각 요소의 사이사이에 빼곡히 끼어있지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왜 이렇게 안무를 빡빡하게 집어넣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윌슨은 이렇게 일축하여 답했지요.
'김연아니까. 그녀만이 할 수 있으니까.' 

 데이빗 윌슨이 김연아 선수와 함께 일하게 된 데에는 인상깊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김세열 前 코치가 윌슨에게 이메일로 연락을 해왔던 거지요. '연아에게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 때 김연아 선수는 한창 부상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싫어질만큼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또, 내성적이었고 잘 웃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윌슨은 어떻게 하면 둘이 같이 즐거워질 수 있을지를 시험하며 첫 두 주 동안은 그녀를 웃기는 것에만 전념했다고 말했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지난 인터뷰에서 오서 코치는 윌슨이 경기장에 나타나면 김연아 선수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환해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윌슨이 연아를 통해 꿈꾸는 것 (SBS 방송 中 캡쳐)

 '연아가 세상을 들끓게 만들길 원해요. 음악이 흐르고 연아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관중석에서 본능적인 반응이 터져나오길 바랍니다.  한
국에선 피겨가 매우 인기 있지만 다른 나라에선 그렇지 않아요. 연아가 세계 피겨의 인기를 되찾아 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올림픽 때 관계자출입증을 발급받지 못해 뒤늦게 표를 구하느라 애썼던 윌슨,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끝나고 연아 선수의 어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또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연아 선수를 아끼고, 피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가 봅니다. 오늘 그 순간 울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연아의 연습을 체크하는 어머니 박미희 씨 (KBS 방송 中 캡쳐) 

 그리고 지금의 김연아 선수를 있게 한 어머니 박미희 씨.
김연아 선수의 표정 연기가 다듬어지지 않았던 주니어 시절, '하기 싫다는 애를 억지로 학대해가며 스케이트를 타게 한다.'는 오해까지 들어가면서도
결코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위대한 어머니.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의 출판 수입은 전액 기부하기까지 했었지요.
김연아 선수의 눈물과 기쁨 모두 함께 하며 오늘날까지 김연아 선수를 있게 한 버팀목인 이 분을 빼놓고 드림팀을 논할 수는 없겠죠.
지난날 힘들었던 일들이 혹 응어리져 가슴에 남아있었다면, 오늘의 기쁨으로 모두 흘려보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행복한 스케이터, 이제 시작이다

                                                                                                                                         

 퀸 유나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당장 3월에 있는 세계선수권부터 치르고 생각하고 싶다고 오늘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연아 선수가 밝혔듯, 아마 그녀 자신도 아직 결정을 내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줘야겠지요. (팬인 저로서는 소치까지 현역 활동을 했으면 하고 바라지만요.)
 
자신의 가장 큰 목표였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룬 지금, 김연아 선수는 어떤 목표를 새롭게 꿈꾸게 될까요?
이젠 마음의 짐을 털고 진정 행복한 스케이터로 웃을 수 있는 거겠죠? 


그랑프리 1차 TEB 시상식 때의 연아

  이제 바라는 것은ㅡ 
더이상 몸도 마음도 아픈 일이 없기를, 언제나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스케이팅 자체를 부담없이 즐겨주기를, 그리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주기를. 

행복한 스케이터 김연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늘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런 기쁨을 알게해준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보너스로 어린 연아의 잠깐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들의 상당수는 디시인사이드 피겨갤러리가 출처입니다.

그 외 일부 이미지들은 직접 캡쳐하거나 이미지레디 작업을 한 것입니다. 

방송 자료의 캡쳐 이미지들이나 움짤들의 저작권은 각 방송사에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 올림픽 금메달 획득 당시에 읽고 고개를 끄덕 끄덕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네이버 블로그에 담아두었다가 티스토리에 보관하기 위해 올려둡니다
김연아 선수의 노력과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

좋은 글과 감동을 남겨주신 네이버 블로그 웃는가면 (chasse4) 님 고맙습니다! ^^
소중한 자료 잘 보겠습니다!